책 리뷰 002 - Jeremy Z. Muller, <The Mind and the Market>
읽은 기간 : 2025.03.06 - 2025.03.11
1. 경제학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필자는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1년 전부터 내가 경제학과 수업에 대해 느꼈던 불만이 한 가지 있는데, 골자는 수업을 통해 경제학을 배워도 실제 사회에 대한 통찰을 얻어간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큰 틀에서 경제학의 정체성은 사회과학인데 내가 들었던 수업들은 그 측면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제 또 돌이켜보면 이 문제의식의 8할은 내 책임이었다 : 내가 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더 넓은 사회와 연관지을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내 능력과 의지의 한계로 그러지 못했다. 이 책은 내 문제의식과 한계를 일정부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서양 역사 속 유수한 사상가들을 매개로 하여 '더 넓은 사회'와 '시장경제'를 엮으려고 시도한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사상가들은 학자 개인의 경험과 통찰을 이용하여 시장경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정성적로 분석하였기에 이를 학부에서 배운 정량적 방법론으로 엄밀하게 만들어보는 것이 좋은 활동이리라 생각한다. 또한 동양 사상가들과 비교분석도 의미 있는 활동일텐데, 저자가 동양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상당히 아쉽다.
2. 책의 내용
책은 볼테르부터 하이에크까지 서양 사상가들이 시장경제를 바라본 견해들을 망라한다. 크게 나누면 시장경제의 옹호자들과 비판자들이 있다. 이들은 시장경제의 영향을 크게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나름의 논거를 대어 옹호하거나 비판하였다. 책이 그런 내용을 취사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많은 사상이 재활용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2-1. 자본주의의 비판
비판자들로부터 시작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한 바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세 가지 전통으로부터 온다:
1) 공화주의/낭만주의적 전통: 시민계급의 적극적 정치참여와 정치체제의 방위를 강조하는 전통.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가 정치적 책무의 망각과 불평등에서 기인한 갈등을 유발하여, 궁극적으로 국가 (또는 수호할 가치가 있는 정치체제)가 쇠락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장경제가 사람을 수단만을 위해 계산하는 존재, 내지는 기계의 일부분으로 격하시켜 문화적 빈곤함을 유발한다고 본다. (Rousseau, Marx, Sombart, Keynes*, Marcuse)
2) 기독교적 전통: 금욕주의와 신에 대한 봉사를 강조하는 전통. 시장경제체제 (특히 금융시장과 관련한 제도)가 기본적으로 탐욕에 기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죄악에 물들이며, 물질적 풍요가 일종의 가짜 신 역할을 하여 사람들이 종교적 헌신을 도외시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Marx**, Lukács)
3) 보수주의적 전통: 시장경제에 기본적으로 내재하는 보편주의가 개별 공동체들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그 정체성이 지탱하던 도덕적 가치들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Möser, Freyer)***
*케인즈가 비판자에 들어있는 것이 의아할 수 있다.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영향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 논리는 낭만주의자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신 배경과 개인적 성향 모두 귀족적이었던 케인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중산층 문화를 천박하다고 여겼다. Economic Possibliites For Our Grandchildern에서 행간을 읽어보면, '아직은 물질적 풍요가 충분하지 않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두 세대 정도 뒤에는 이렇게 고생하면서 다들 시장경제에 참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정도의 시나리오를 펼친다.
**종교적 헌신에 대한 이야기는 맑스에게 해당되지 않지만, 저자는 '탐욕에 기반한 죄악'이라는 아이디어가 맑스의 저작의 근본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특히 '돈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생각이 맑스 사상의 기반에 있다고 주장한다.
***버크가 보수주의적 전통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 의아할 수 있겠다. 그러나 버크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가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여 자유무역을 옹호하였다. 그는 다만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 (예컨대 법과 관습, 도덕률)들이 시장경제 이전으로부터 기인하는데, 시장경제가 확산시키는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사회제도에 과도하게 적용되면 그 제도들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였다. 이 관점이 결국 그의 저서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를 관통하는 메세지이다.
2-2. 자본주의의 옹호
책에 서술된 옹호자들은 많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애덤 스미스와 조지프 슘페터 두 사람의 사상만 제대로 이해해도 옹호자들의 논거는 대부분 포섭이 되기에, 이 둘을 소개하겠다.
2-2-1. 스미스가 바라본 자본주의
스미스는 자본주의를 경제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서 옹호하였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옹호는 대부분에게 잘 알려진 논리이다 : 적절한 제도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법이 뒷받침되면 (스미스는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하였다), 자본주의는 고도의 사회적 분업을 가능케 하여 생산성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다. 잘 작동하는 시장경제는 개인의 탐욕으로부터 출발한 행동 (효용극대화, 이윤극대화)가 사회적 공공이익으로 귀결되도록 전환시킨다.
도덕적 측면의 옹호는 조금 더 흥미롭지만 덜 알려져 있다. 스미스는 도덕적 가치를 두 층위로 구분하였다. 하위 가치들은 절제, 겸손, 성실, 근검절약 ("temperance, decency, modesty, and moderation ... industry and frugality")의 가치들로, 상공인, 중산층의 가치이다. 상위 가치들은 지혜, 자애, 자기희생, 봉사정신 ("wisdom, benevolence, self-sacrifice, and public-spiritedness")의 가치로, 스미스의 견해에 따르면 희귀하지만 사회의 발전에 꼭 필요한 가치다. 스미스는 어차피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위 가치를 실현시키는 상황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도덕적 가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켜 하위 가치들이라도 실현시키는 삶을 가능케 하는 데 있었다.
스미스의 본질적인 사상은 이 정도로 이해하였다. 이제 스미스에 대해 몇 가지 정보만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1) 스미스는 분업이 가져다줄 수 있는 폐해에 대한 낭만주의 전통의 비판을 잘 이해하였다. 그는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의무교육이라고 보았다. 분업이 인격 발전을 저해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세계를 좁히기 때문이므로, 이 효과를 줄이기 위해 의무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영연방 지역에는 의무교육이 도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2)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단 한번 언급한 것은 경제학도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스미스의 시장에 대한 견해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미스는 제도가 적절히 뒷받침되면 시장은 이기심을 사회적 공익으로 잘 전환시킬 것이며, 그 제도가 무엇이며 그 전환과정이 무엇인지는 과학적 관찰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에게 지식인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국가 정책 자문위원이었다. (가히 합리주의적 전통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할 수 있겠다.)
2-2-2. 슘페터가 바라본 자본주의
슘페터는 많은 경제학자들과 다르게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가 자본주의를 옹호한 본질적 이유는 그것이 기업가들의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환경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환경이 기업가들에게 유리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1) 성공한 기업가에게 독점이윤이 돌아가기 때문; 2) 돈이 없으면 안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돈을 벌도록 협박하기 때문; 3)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대다수 민중의 분노를 법적 제도와 정치적 제도를 통해 막기 때문이다.
여기서 슘페터는 버크의 분석과 유사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성숙과 함께 기업가와 독점이윤의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고방식이 확산될 것이며, 이것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제도들을 파괴시켜 결국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대중이 사회제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은 학습하지만 그 사회제도의 숨겨진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할 것이라 보았다.
(이 논의는 그는 생애 경험을 이해함으로써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생전 대공황으로 인해 뉴딜정책을 비롯한 재분배정책들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뉴딜정책이 포퓰리즘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특히 독점기업에 대한 공격과 정부의 광범위한 경제 개입이 어차피 발생했을 경기회복을 약화시켰다고 보았다.)
결국 슘페터와 스미스 모두 자본주의를 경제적 측면에서 옹호하였고, 슘페터는 스미스와 달리 경쟁보다는 독점, 상공업인의 시장참여보다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 과정을 더 강조했다고 볼 수 있겠다. 슘페터는 지극히 귀족적인 논리로 자본주의를 옹호하였고, 실제로 이 단원을 읽으면서 니체의 영향이 많이 묻어나왔던 것 같다.
3. 책에 대한 개인적 생각
나는 이 책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서양사상가들이 시장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들은 1) 스미스가 자본주의의 도덕적 영향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 2) 슘페터의 사상 전체 (경제학에서 기업에 대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도 개인적으로 불만이었는데, 슘페터의 사상이 더 궁금해졌다. 슘페터의 저서도 읽어볼 계획이다.) 3) 모든 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그 체제 속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한다는 사실에는 합의가 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체적으로 그 영향에도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덜 충동적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을 신경쓰게 만들고,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을 학습시킨다. 개인은 그 사회 속에서 형성된다는 고전적 진실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다.
구체적인 모델을 갖고 놀면서 직관을 쌓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학자로서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들이 조금 더 널리 알려져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든다.
서양 사상사에 관심 있는 사람과 '경제학'을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경제학사'나, '경제학'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