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004 - Gabor Maté, <In the Realm of Hungry Ghosts>
1. 저자 소개
Gabor Maté 박사는 캐나다 의사로, 1944년 헝가리에서 태어났으나 유대인이었던 탓에 영아 시절 외국으로 입양되었다. 밴쿠버의 Portland Hotel (마약중독자들이 치료 및 재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오랜 기간 동안 마약 중독자들을 돕고 지켜본 의사이다. ADHD와 중독에 대한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2. 책의 내용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중독자들과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서술하는 내용이 주이다. 중반부는 중독의 생리학과 뇌과학을 다루고, 중독이 발생하는 과정과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이야기한다. 후반부는 중독자를 대하는 정책의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중독으로부터의 회복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테 박사의 견해들은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중독의 원인에 대해 마테 박사는 물질적 영향 (예컨대 마약을 실제로 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유전적 영향이 과대평가되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독을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
마테 박사가 책에서 인용한 연구들에 따르면 영아 시절 부모와의 감정적 유대가 이후 뇌 생리 (그리고 중독 취약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꽤 놀라운 연구는, "부모가 아이를 바라볼 때의 눈동자 크기가 이후 신경전달물질 수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는데, 제대로 측정가능한 범주의 인과인지는 의심스럽다). 따라서 마테 박사가 보기에, 유전적 영향을 가장 강하게 뒷받침한다는 "쌍둥이 입양 연구"들은 그 의의가 과대평가 되어있는데, 어머니가 임신과 입양 전까지의 기간을 걸쳐 이미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독이 되는 과정에 대한 이런 견해에 의거하여 그는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독자가 중독을 끊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가지려면 결국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현재의 강경 수감 정책은 중독자를 사회에서 단절시켜 중독을 악화시킨다는 것. 마테 박사에게 마약 중독 여부는 마약의 접근 가능성과 큰 관련이 없기에, 그는 전면적인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3. 개인적인 생각
마테 박사 본인도 일종의 행동 중독에 시달리는데, 그는 일과 CD 구입에 중독되어있다. 본인은 이런 행동 중독이 -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는 크게 다르다 하더라도 - 마약 중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그 부산물로 생기는 "공허함"도 어느 중독이나 동일하다고 본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분리가 자신의 ADHD와 중독 행동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듣던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그게 어떻게 같냐?"라고 반문했다. 마테 박사는 인간의 잠재력과 내재적 고귀함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기에, 그 발현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들 (그것이 메스암페타민이건, 강박적 일이건)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런 견해는 중독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데에는 확실히 유용한 견해이나,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그런 잠재력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마테 박사의 일 중독이 마약 중독과 마찬가지로 같은 공허감을 준다 하더라도, 그리고 약물 중독에 사회적 편견이 생기기 전에 약물을 습관적으로 하면서도 잘 기능했던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eg. 폴 에르디쉬), 둘을 본질적으로 같이 취급하려는 시도는 신선하기는 하지만 무리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중독에 이르게 되는 경위가 결국은 삶의 스트레스고, 한 중독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면 다른 중독으로 옮겨간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그 결과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마약 중독으로부터 일 중독으로 옮겨가게 된다면, 개인에게는 동일한 불행한 결과다 하더라도 최소한 일 중독은 생산성은 늘리지 않겠는가. 냉정한 이야기지만, 사회적으로는 후자가 도움이 될 것이다. 마테 박사의 진단대로 현대 사회가 "중독 권하는 사회"라면, 마약의 전면적 비범죄화를 통해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 중독에 취약해진 개인들한테는 결국 동일한 "공허감"을 줄 것이고,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중독으로부터 사회적으로 덜 유용한 중독으로 옮겨가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기중독자들에게는 치료의 기회가 생기겠지만, 급진적 비범죄화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 뻔한 이상 이를 무조건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마테 박사의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고, 많이 울기도 했다. 인간의 내재적 고귀함에 대한 신념을 오랜 기간 동안 지켜내고, 이 신념을 몸소 구현한 마테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독에 대해 궁금한 사람, 사람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강한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크게 불편할 수 있으니 추천하지 않는다.